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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산 아래 첫 집인데 여름엔 산사태, 겨울엔 눈사태랑 함께 살아요."
"웬 눈이 이렇게 많이 온대요. 지겨워죽겠어요."
"치우고 나면 또 쌓이고 뒤돌아서면 또 쌓이니, 하루종일 눈만 치웠어요."
오늘은 우리 반이 성당 청소당번이다. 눈 속을 헤치고 청소하러 온 신자들이 여나무명. 그들 모두 모여서 하는 첫마디가 눈, 눈, 눈 이야기다.
우린 성전과 친교실, 공부방을 청소하고 주차장에 쌓인 눈을 치웠다.



설날 이후의 외출이다. 마트에 들러 장을 보고 돌아오는 이면도로는 여전히 빙판이다. 그러나 이웃이 힘들여 치운 도로는 따뜻한 햇살에 녹은 안전한 길이 되었다. 사람의 손길이 닿은 곳과 그렇지 않은 길은 천양지차. 나도 어젠 남편과 함께 진입로를 치우고, 경사진 곳엔 염화칼슘을 뿌렸었다.
이 정도의 길이라면 주간보호센터의 차량이 충분히 운행할 수 있을 터인데, 오늘도 눈탓을 하며 센터는 휴무라고 알려왔다. 홀로 살고 있는 독거어르신들이 걱정되는 대목이다.
오후 내내 모자를 떴다. 목도리와 조끼를 뜨고 남은 실이 있어 또 바늘을 잡았다. 10년도 더 된 핸드메이드 모자가 너덜너덜해져서 더 이상 쓸 수가 없어서다. 내 사이즈로 마무리해서 "자기야, 어때?" 하며 남편에게 물으니 "스테파니아 목도리랑 세트네."라고 한다. 남편의 말에 목표 수정, "그러지 뭐." 내모자는 다음에 다시 뜨기로 한다.



앗, 5시다. 모자 뜨느라 부모님 식사준비가 늦어졌다. 오늘 사온 토종닭으로 푹 끓인 백숙을 담아 부모님 댁으로 배달을 했다. "아이고, 우리 딸, 미안해서 어쩌나." 밥상을 받으면 늘 하시는 엄마의 말씀이다. 딸이 차려드리는 밥상이 왜 미안하다는 건지......
문을 닫고 나오는데 창문을 열고 엄마가 소리를 치신다. "내일부터는 내가 해 먹을게."
"그러십시요." 대답과 함께 난 웃음을 터뜨린다.
치매라면서, 미안타는 말과 내일부터 내가 할게라는 말씀은 늘 잊지 않고 하시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