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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그락, 달그락 소리에 눈을 뜬다.
아버지 발자국 소리, 눈 쓰는 빗질 소리다.
내일은 눈이 온다고 남편은 어제 자동차 덮개를 씌우더니 일기예보 대로 새벽에 눈이 왔다. 소낙눈 치고는 제법 내려 빙판 위에 또 눈이 쌓였다.
"눈 때문에 집 앞까지 갈 수 없으니 오늘은 정거장까지 나와주세요" 센터장님의 전화다. 평소 집 앞까지 모시러 오고 모셔다 주곤 하는데 벌써 여러 번, 눈이 쌓이면 걸어서 정거장까지 나가야 한다.
"엄마, 9시 10분쯤 마을버스 정거장으로 나오시래요" 일단 전화를 드리고 그 사이에 쌓인 데크의 눈을 치운다. 그런데 시간이 되었는데도 두 분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내려가 볼 수밖에......
빙판 위에 눈이 쌓였으니, 밟는 곳마다 미끌미끌, 조심조심 걸어 엄마네 집에 도착하니, 엄마는 꽃단장중이다. 평소에도 외출할 때엔 분을 바르시는데, 오늘은 입술까지 분홍색 립스틱으로 단장하셨다. 90이 다 된 엄마인데도 화장을 한 모습이 보기 좋다. 아니, "예쁘다'.
두 분을 양쪽에 붙잡고 눈 길을 걸어가는데 "노인회관이 없었으면 하루 종일 심심했을 텐데, 난 회관이 너무 좋다." 하신다. 엄마는 늘 센터를 노인회관이라고 하신다.
참 다행이다. 사람을 좋아하고 에너지 넘치는 엄마가 센터에 가시는 길이 마실 가는 것 마냥 즐겨하시니 보기에도 흐뭇하다. 그래서 센터 다녀오시는 평일은 늘 밝은 모습인데, 주말이 문제다. 집안일보다 밖에 일을 좋아하시니 덜 익은 무도 뽑으시고, 호박도 따다 갖다 놓고, 아들네 준다고 무청도 만드시는데 딱 거기까지, 나머지 뒷정리는 늘 내 몫이다. 그래서 넘쳐나는 김치요, 시래기를 말리는 등 처음 해보는 일이 너무나 많다. 그래도 좋다. 걸어 다니실 만큼 건강하시니 감사하다.
커피는 이미 다 식었다.
부모님을 배웅하고 눈 쌓이는 풍경을 바라보다 화장한 엄마 때문에 옛날 일을 생각하다 커피를 잠시 잊고 있었다.
아니, 눈 때문이다. 자주 내리는데도 눈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하염없이 바라다보면 이상하게 옛날 일도 생각나고, 잊힌 사람도 떠오르곤 해서 눈이 올 때마다 도낏자루가 썩어나곤 한다.
그런데 아침에 아버지가 쓸어주신 데크에 눈이 쌓였다.
'소리 없는 아우성' 때문에 또 일거리가 생겼다.
에고, 이 녀석들아! 이제 그만 오너라.
눈을 치워야 하는 현실에, 새하얀 낭만이 쓸려 나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