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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뚤빼뚤 글쓰기

요즘 백일잔치는

요술공주 셀리 2023. 6. 6. 10:24

이른 새벽에 잠에서 깼다.
이렇게 일찍 일어나지 않아도 되는데, 그래서 잠을 다시 청하지만 말똥말똥. 아들이 보내준 동영상을 시청한다. 알~, 앙~, 올~, 아르르 대체 어느 나라 말인지 알 수 없는, 손주가 옹아리를 한다. 백일도 되지 않은 아가가 뭔 옹알이를 하냐고 동영상을 보내라고 했는데, 우와 진짜다. 옹알옹알 소리 내는 손주가 신기하고 신기하다. 세 시간마다 우유를 먹고, 20시간 잠을 자고, 쉬 했다고 울고, 배고프다 울던 아기였는데 옹알이라니...

일찍 준비한다고 서울에 일찍 가는 건 아닌데도, 일찍 일어났다. 오늘은 손주가 태어난 지 백일이 되는 날이다. 아들 백일 때도 이렇게 설레었었나?

첫 차를 탔다. 마음은 이미 서울 아들네 집. 버스 안에서도 시계만 바라본다.

할머니가 왔는데도 여전히 잠을 자고 있는 손주. 그런데 한 달 동안 볼 살이 올라 인상이 또 달라졌다. 태어난 지 백일이 된 주인공을 위해 사돈 부부와 외삼촌네 가족, 우리 가족이 모여서 조촐한 백일잔치를 열었다. 잘 자고 우유를 먹고 난 후라서일까? 한복을 입을 때도 잘 참고, 세리머니 하는 딱딱한 의자에서도 울지 않고 잘 앉아 있다. 어른들의 환호 소리와 시끄러운 낯선 분위기에도, 사진을 찍을 때도, 한 번도 울지 않는 손주가 기특하기도 안쓰럽기도 하다.
손주는 모든 가족이 사진을 찍고 가족사진을 두루 찍도록 훌륭한 모델을 해주었다. 그렇게 한몫을 다 한 손주는 편안히 또 잠을 잔다. 어른들이 편히 식사를 할 수 있게 잠을 자는 손주는 벌써부터 효자노릇을 한다.

"백일 행사를 혼자 준비한다기에 아이랑 어떻게 준비할지 걱정이 많았는데, 세상 참 편해졌네요." 사부인이 딸이 준비한 백일상과 주문한 떡 등을 보고 하시는 말씀이다. 인터넷에서 원하는 백일상을 주문하면 택배로 집까지 배달을 해주고, 설명대로 세팅을 하면 사진 찍기 좋은 훌륭한 백일상이 차려진다. 행사 시간에 맞춰 '일백자'가 새겨진 백설기와 수수팥떡이 배달로 도착하면 상에 올려놓기만 하면 된다.

손님들 챙기느라 주인공인 아이에게 자칫 소홀해서, 우리땐 백일 잔치 후유증으로 부모가 아프거나, 아이가 아프기도 했었는데, 그러지 않아 참 다행이다. 점심은 백일 세리머니가 끝나는 시간에 배달이 되어, 좋아하는 싱싱한 생선초밥을 먹을 수 있었다. 며느리는 후식으로 커피와 과일을 내왔다. 양가 부모님과 가족들만 모였는데도 이미 열명이다. 아무리 배달을 해서 행사를 했어도 며칠 전부터 준비했을 것이다. 청소하랴, 아이 챙기랴, 빠뜨린 건 없는지 꼼꼼히 챙겼을 터. 아들이 터미널까지 배웅해 준다는 것을 끝까지 뿌리치고 혼자 지하철을 탔다. 할머니 간다고 우유 먹고 기분 좋은 손주가 생글생글 웃어주었으니 무얼 더 바라겠는가? 옹알옹알 인사해 주었으니 더 바랄 게 없다. 소낙비 지나고 난 서울 하늘도, 오늘은 맑고 푸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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