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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나가 한해살이 꽃으로 알고 해마다 구입을 해서 화단에 심곤 했었다.
그런데, 키 크고 이국적인 칸나가 구근을 잘 관리하면 해마다 꽃을 볼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작년 10월 말, 아니 11월 초였던가?
박교장님 가르침대로 구근을 캐고, 희석한 락스액에 담갔다가 말려서, 겨울을 나게 했다. 그런데, 처음인 데다 무얼 잘못했는지, 신문지를 풀어보니 두어 개만 빼고는 모두 말라비틀어진 상태였다. 혹시나 하면서 구근 모두를, 올 봄에 라일락 옆, 빈 땅에 묻어두었다. 심기는 했어도 한편으로는 별 기대를 하지 않았었다. 게다가 칸나를 심은 곳은 라일락 jone. 어쩌다 생각나면 물을 주는 곳. 거름도 주지 않고 내방 쳐 두었더니, 역시나 감감무소식!
빈 마음을 채우려고 얼마 전, 칸나 모종 한 개를 사다가 그 옆에 나란히 심었었다.

그제는 막냇동생 네가 다녀가고, 어제는 서울에 다녀오느라 '화초에 물 주기'를 이틀이나 걸렀다. 저녁나절이 되기를 기다렸다가 서쪽 화단부터 물을 주기 시작했는데......, 앗! 서울 가기 전엔 분명 아무것도 없었던 곳에 뾰족 뾰족 칸나 싹이 돋아있는 게 아닌가?
혹시나, 하고 찾았다가 역시나, 하고 돌아서던 장소였는데, 서울 다녀온 사이에 새 싹이 뿅! 하고 나타나다니......
"야호! 반갑구나, 반가워... ", 우스꽝스러운 우리만의 세리머니를 나누었다.

이런 적이 강원도에선 처음이 아니다. 범부채가 그랬고, 목화도 그랬다.
씨를 뿌리고는 날마다 목 빼고 쳐다보고, 기다리다가 파릇한 새싹이 보이면 자동 미소! 환하게 웃는 일이 여간 기쁘고 반갑지 않을 수 없다. 우단동자와 풍선초, 족두리꽃, 백일홍은 학수고대한 만큼, 이미 웃음꽃을 안겨 주었다. 목화와 한련화는 애타게 기다릴 때 나타나 주었고, 키 작은 한련화는 어느 날, 빨간색 꽃도 피어주었다. 내겐 다 효자 자식들이다. 그런가 하면 아예 포기하고 기다리지 않던 범부채는 2년 만에 싹을 틔웠다.
참 이상도 하다. 기다리면 오지 않고, 기다리다 지칠 때쯤 아니면 아예 포기하면 나타나는 세상의 많은 것들처럼, 여기서도 이 진리가 통한다는 것이......

올봄에 뿌린 씨앗 중 대박은 단연코 안개꽃이다.
포트에서 자란 안개꽃도, 이웃집에서 얻어다 직접 뿌린 분홍 안개꽃도, 모두 다 발아가 되었다.
그런데, 우리 집에서 대박 사건 1등은 이제 칸나가 되었다.
'혹시나'가 '역시나'가 되어 준 꽃.
포기했을 때, '그러면 안 된다'라고 가르쳐 준, 참 고마운 꽃.
아니다. 이 아이들도 옆에서 응원해 주는 동료가 있을 때, 힘이 되었다는 걸 확인해준 꽃.
칸나! 너는, 잊고 지나며 보낸 시간이 쌓여서 어느 날 여름이 오면, 그때 또 정열의 붉은 꽃을 피워줄 테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