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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비가 왔다.
한참을 내린 비에 촉촉한 대지가 여유만만. 싱그런 신록과 해맑은 하늘을 만들었다.
식전부터 아림과 아정이 찾아오니, 온 집안에 꺄르르 웃음소리로 금세 생기가 돈다. 한동안 손녀들의 웃음소리가 집 안을 맴돈다.
11시쯤 1차로 조카 가족이 집으로 돌아갔다.
점심 후엔 남편이 출장지로 출발했다. 저녁엔 동생네가 볼일이 있다며 올라가고...... 갑자기 아이들 웃음소리가 온 데 간 데 없다. 분명 다녀갔는데, 언제부터 소리가 없는 세상이 되었을까?
소나기가 내리지 않았다면 여긴, 숨소리조차 파업을 한 일요일이었을 게다.
소나기 그치고 흙이 물기를 흠뻑 머금었다.
비 오고 난 후엔, 늘 하는 일이 있다. '풀 뽑기'다. 충분한 수분을 머금어 잡초의 뿌리가 들떠 있을 때가 뿌리가 잘 뽑힌다. 어제도 이미 한 판 작업을 했고, 서늘한 구름을 이불 삼아 오후에도 풀을 뽑았다. 한 곳에 뭉쳐있는 새싹(족두리 꽃과 안개꽃)을 뽑아 빈 곳에 골고루 퍼트려주고, 호미로 흙을 긁어주어 새로운 공기도 불어넣어 주었다.

콩알만 하지만 매일 딸기를 따고 있다.
딸기는 아정이가 좋아한다. 오디는 아림이 좋아해서 따 주었는데 생각보다 맛있어서 놀랐다. 가지를 쳐준 보리수가 올해는 알맹이가 제법 실하다. 엊그제 한 그루 얻어온 산딸기도 빨갛게 익어가고......

꽃의 계절, 신록의 계절이다.
낮기온이 오르면서 오이며, 호박, 가지에는 꽃이 피고 있다. 이제 곧 열매가 맺힐 것이고, 브로콜리와 완두콩은 수확이 가능하다. 일손이 바빠지는 만큼 수확의 기쁨도 커진다. 뙤약볕으로 얼굴이 까매지는 만큼 열매 또한 날마다 익어간다.

풀과의 전쟁에서 완패를 했다.
풀과의 전쟁에서 이겨보겠다고 전면전을 벌였지만, 손가락 관절만 생기고 보기좋게 완패를 했었다. 작년 일이다. 호기롭게 신청했다가, 보기 좋게 나가떨어지고서 나서야 '풀'과 친해졌다. 가까이 하기엔 먼 당신이었지만, 여유를 가지니 풀과 친해지더라.
서늘한 시간대에, 할 수 있는만큼만 뽑다보니 날마다 일상처럼 하고 있어도 나는 즐거워서 좋고, 땅도 깨끗해서 좋고 무엇보다 아이들이 편안해보여 좋다.

"밭은 농부의 발걸음 수 만큼 자란다."고 엄마가 늘 말씀하신다.
그래서 엄마는 신발이 닳도록 아침 저녁으로 밭을 돌아다니신다. 뒷짐을 지고 천천히 떼는 엄마의 걸음걸음마다 당근도 웃고, 가지도 웃는다. 꺄르르 손녀들의 웃음소리 대신 푸근푸근, 포근포근 여기저기, 초록초록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퍼져난다. 봄과 여름에 누릴 수 있는 호사중 하나다.
웃음은 전염이 된다고 하더니, 수확의 기쁨보다 더 큰 웃음소리가 마을 가득 퍼진다. 하루종일이 즐거운 나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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