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삐뚤빼뚤 글쓰기

인연(9)

요술공주 셀리 2023. 7. 13. 11:47

"내 친구 좀 찾아줘."
"친구가 보고 싶어." 하시는 엄마 때문에 우린, 다시 만났다.

60여 년 전, 엄마는 고향 친구를 공주에서 만났다. 아버지 직장 때문에 이사를 했는데, 아주머니도 공무원인 남편 따라 공주로 오셨으니, 두 분의 인연은 필연이 되셨다.

엄마는 당시, 지인들과 '계'를 하셨다. 어렸지만, 엄마는 큰 딸에게 가끔 심부름을 보내셨다. 아주머니 댁에 곗돈을 배달했던 기억이 있다. 아주머니 댁은 집에서 한참을 걸어가야 해서 난, 그 심부름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제민천을 따라 걷다가 다리를 건너고, 좁은 골목길을 걸어서 마주치는 마지막 집이 아주머니댁이었는데, 개가 먼저 짖곤 했었다. 유난히 개를 무서워해서 아주머니가 늘 마중을 나와주셔야 했다. 아담한 마당에 빨간 샐비어가 참 인상적이었는데......

심교수는 아주머니의 큰 아들이다. 우린, 엄마 친구의 자녀로 만났다. 친구라기 애매해서 서로 늘 대면대면했어도, 안 세월이 어언 60년이 되었다. 한 번도 같은 학교를 다닌 적은 없지만, 같은 학년이어서 관심이 많았다. 엄마에게 늘 그 친구의 이야기를 전해 들어서, 어느 학교를 나왔고 무얼 하는지 우린 서로에 대해 너무나 잘 아는 사이였었다.

엄마가 강원도로 이사하면서 각별했던 두 분은, 자주 만나지 못해 늘 안타까워하셨다.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니, 꼭 한 번 보고 싶다." 하셔서 큰 아들인 심교수와 간신히 연결이 되어, 두 분은 강원도에서 눈물의 재회를 하셨다. 재작년 일이다.

심교수는 그림쟁이다. 화가로도 제법 이름이 있는 작가다. 서울에서 열리는 개인전에서 우리도 다시 만났다. 60여 년 만의 일이다. "하나도 안 변했네." 어릴 때 안 엄마 친구의 아들. 우린 친구일까? 생각할 겨를도 없이 아주 작은 양의 추억을 소환했는데, 친구의 친구까지 서로 공유하는 친구의 친구였던 것.

방학이어서 양평의 작업실에 내려와 있다기에 오라고 했더니, 빗속을 뚫고 심교수가 달려왔다.
"오빠!" 동생이 먼저 반긴다.
"누구...?" 두 사람은 전화 통화만 한 사이. 동생이 대여섯 살 때 서로 만나고 처음이니, 기억날 리 없다.

우린, 참 재미 있는 사이다.
친척도, 친구도 아니지만, 부모님 때문에 저절로 친구가 되었다. 예닐곱 살에 만난 기억 하나로 회갑이 지나서 다시 만난 사이. 그동안 서로의 살아온 공간은 너무나 다르지만, 긴 시간의 '탱탱한 힘'은 사람을 이렇게 또 연결할 수 있나 보다.

"오빠. 이제 우리가 양평에 갈게요."
"그려, 나도 또 올게."

다행이다. 거세게 퍼 붓던 빗줄기가 잠잠해졌다.
비 그친 잣나무에 대롱대롱 매달린 이슬이 참 곱기도 하다. 심교수의 양평 작업실은 또 언제 볼 수 있으려나? 언제나 갈 수 있으려나?

 
 

'삐뚤빼뚤 글쓰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황태더덕구이 정식  (2) 2023.07.18
초대  (0) 2023.07.14
숲 속의 공주  (0) 2023.07.12
어떻게 같은 일이...  (17) 2023.07.09
소문난 잔치  (2) 2023.07.08
공지사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