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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뚤빼뚤 글쓰기

아, 가을인가

요술공주 셀리 2023. 10. 7. 16:58

아흐, 춥다.
해 떨어진 저녁나절이 되면 으슬으슬 추워서 보일러를 틀고, 난로를 때고 난리법석이다. 선풍기 돌아가던 자리에 보일러가 돌아가고 있다. 
더위도 싫지만 추위가 더 힘들다.
추위를 못 참는 사람이 하필 제일 춥다는 강원도에 자릴 잡을게 뭐람? 어쩌다 강원도는 긴팔을 꺼내 입고도 저녁마다 보일러를 틀어야만 견딜 수 있다.

부모님은 아침 일찍부터 하루종일 밭에서 일을 하신다.
여름 내 하늘 높은 줄 모르게 가지를 뻗었던 끈질긴 목숨, 그 긴 호박넝쿨을 오늘 걷어 내셨다. 이파리 사이에 숨어 있던 늙은 호박이 속속들이 끌려 나왔다.
그동안 호박넝쿨 밑에서 숨이 차던 땅콩도 넝쿨구속에서 벗어나고, 강낭콩과 동부, 팥까지 다 수확한 밭은 오랜만에 흙색 요를 깔았다.
 

 

 

추석이 시작점이었다.
여름 옷은 정리하고, 긴팔 가을 옷을 장롱에서 꺼내왔다. 가을은 이제부터. 그렇게 긴 여름이 문을 닫자, 후다닥 10월이 왔다.
서랍에서 막 꺼낸 가을이 엊그제인데, 엄마는 벌써 가을걷이를 하고 계신다.
 
하긴, 우리도 별 수 없다.
추석연휴라고 딱히 계획된 일이 없으니, 연휴 내내 일만 하고 있다. 추석에 곰국을 끓인 가마솥을 닦아놓고, 
하얗게 바랜 데크에 오일 스테인을 칠하는데만 2박 3일이 걸렸다.
어느새 힘이 빠져 뽑기 쉬운 가을풀을, 시도 때도 없이 뽑고 있고, 어제는 웃자란 개나리 가지를 전지하는가 하면, 오늘은 비들 비들 마른 꽃대공도 잘라주었다. 오후엔 그동안 야외생활을 하던 화분을 집 안으로 들여놓는 작업으로 한나절을 또 보냈다. 화분과 화분받침을 깨끗이 씻어 주고 요리조리, 여기저기 꽃과 화분을 집 안에 들이니 새삼 새로운 분위기가 또 생겨나서 기분은 좋다. 강원도는 반년은 여름, 반년이 겨울이라더니 화분은 내년 4월까지 나와 함께 실내생활을 해야 할 거다.
 

 



웨딩찔레와 백일홍, 천일홍과 과꽃, 족두리꽃과 국화가 공존하고 있으니 여름과 가을 사이에서 하늘도 바람도 갈 곳을 모르고 헤매고 있다. 여름과 가을의 모퉁이에서 서성이는 바람. 햇빛을 숨기고 구름을 퍼뜨린 하늘이 가을 한 복판에서 휘리릭~, 찬바람을 불러내고 있다.  

"가을이 싫다."던 강원도 친구의 말이 자꾸만 생각난다. 친구는 추워지는 날씨가 쓸쓸하고 외롭다고 했다. 봄은 기다림으로 힘이 들지만, 긴 겨울은 외로움이라고 했다. 
외로움으로 가는 길. 스타트 라인을 벗어난 가을이 두 팔을 벌리고, '오메 단풍 들겄네' 를 훠이훠이 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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