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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뚤빼뚤 글쓰기

수를 놓다

요술공주 셀리 2024. 1. 4. 12:47

어떻게, 이걸, 이렇게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세탁기가 빨래를 완료했다고 삐비빅할 때까지, 2~3 시간 동안 꽃 한 송이, 이파리 하나 완성했다. 한나절 일한 총량은 꽃 한 송이와 이파리 세 개. 허리를 펴기 위해 일부러 빨래를 하고 마당을 쓸었다.
이렇게 힘든 일일줄 알았더라면 시작하지 않았을 텐데, 뜯을 수도 없고 더 하자니 힘이 든다. 진퇴양난이다. 이걸 왜 시작했을까 후회막심이다.
 



"언니는 어울리지 않아. 옷을 참 못입는 것 같아."
중국에 갔을 때 동생의 조언에 충격을 받았다. 젊을 땐, 나름 베스트 드레서라고 자부하던 프라이드에 진한 상처가 그어졌다. 나이도 있고 뱃살도 생겨서, 몸에 꼭 끼는 옷이 덜 어울린다는 것이었다. 공식석상에 자주 서야 하는 직업특성상 정장을 즐겨 입어서 그렇단다 했더니, 정장도 여유 있는 스타일이 얼마나 많은데 라는 대답을 듣고는 말문이 턱 막혔었다.

성질 급한 내가 가만 있을 수 없어 득달같이 백화점에 갔고, 동생이 골라준 옷은 생각보다 가격이 꽤 있었다. 망설임은 잠시, 덥석 구매한 옷이 호주머니에 수가 놓인 옷이다. 수 때문에 한 편 고급스러워 보이기도 하지만, 낯익지 않아 여전히 갸우뚱하는 새 옷이다.
그런데 어느 날, 왜 그런 생각이 들었을까? 청바지에 수를 놓으면 새 옷과 세트가 될 게다. 그럼 잘 어울리겠지? 그 생각 때문에 사달이 난 것이다.
 

 

새 옷을 샘플로, 청바지에 볼펜으로 새와 꽃, 나뭇가지, 이파리를 그려주었다. 시작이 반이라고 했던가? 급기야, 의욕이 불타오른다. 바늘과 실을 잡고 새 한 마리를 완성할 때까지는 기분이 좋았었다. 여고 때 수를 놓아보고 오랜만에 바늘을 잡았지만, 손이 굼뜨긴 해도 나름 재미가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몸이 배배 꼬이고 점점 지루해지기 시작한다. 재미는 이미 온 데 간 데 없고 지루함이 쌓여간다. 수가 놓인 옷이 왜 그렇게 고가였는지 이제야 알 것만 같다.

휴, 잠시 휴식. 허리도 아프고, 눈도 침침하고 점점 지루해진다. 그만하고 싶은데, 완성은 해야겠고 에라, 산책이나 가자. 6000보를 걷고, 생강차 한 잔을 마시고서야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바늘을 잡는다. 겨우겨우 마무리를 했는데도 꽃 한 송이를 더 수 놓아야 한다.
오늘은 여기까지. 앞으론 절대 수를 놓겠다고 하지 말아야겠다. 힘 든 일은 이제 그만.
그러니 청바지, 올봄에 입을 수는 있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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