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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뚤빼뚤 글쓰기

눈사람

요술공주 셀리 2024. 1. 3. 16:09

"두 시의 데이트를 신청합니다."
언제 들어도 가슴 설레는 말이다. 어제 만들고 남은 양장피 재료를 정리하고 있을 때, 막내에게 핸드폰이 왔다. 어젠 혼자서 산책했는데, 오늘은 함께 산책하자고 데이트 신청을 해왔다.
지당한 말씀. 오우 케이다.

'자세히 보아야 예쁜 눈'이 내린다.
보슬비보다 더 여린 눈이 바람이 부는 대로 왼쪽으로 몰렸다가, 오른쪽으로 기울었다가, 보일락말락 숨바꼭질을 하고 있다. 나 잡아봐라 하는 어린아이 같아 꼭 안아주고 싶은 눈이다. 눈이 오는 모습에 또 마음이 콩닥콩닥. 데이트 시간 5분 전부터 집앞에 나와 동생을 기다리고 있다.

두시. 보디가드 한 명과 동생과 산책에 나선다.
자동차가 다니는 도로엔 눈이 다 녹았지만 논 밭과 산등성이엔 여전히 하얀 나라다. 강원도에 폭설주의보가 내렸을 때에, 서울에도 눈이 펑펑 왔다는데, 도심엔 하얀 나라를 만들어주지 않았다고 한다. 오히려 녹아내린 눈 때문에 질척 질척 지저분했다고 한다.
여긴 축복받은 땅. 산등성이의 하얀 세상은 여전히 반짝이고 있다.

눈발이 날리는 날씨 때문일까? 자동차도, 인적도 드물다. 눈 녹은 자동차길을 건너 눈 쌓인 논둑을 휘~ 돌아오니, 어느새 동네 어귀. 옥이가 더 걷자고 해서 산길로 접어들었다. 그러나, 입구에서 되돌아왔다. 쌓인 눈이 발목까지 푹푹 빠진다. 얼음 빙판에서 훌러덩 넘어진 기억 때문에, 입구에서 그냥 되돌아 왔다.

"눈사람 만들어 봐. 엄청 잘 뭉쳐져."
며칠 전 남편과 만든 눈사람 이야기를 전했더니, 옥이는 생강차 마시고 가란 말을 듣고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올라가 버렸다. 혼자 생강차를 마시며 불멍하고 있을 때, 카톡!
옥이가 눈사람 사진을 보내왔다.
푸하하, 이 집의 trademark는 분홍색 플라스틱 바가지 모자. 작년 눈사람이 썼던 모자 그대로다. 안주인을 쏙 빼닮은 미소천사, 인심 후덕해 보이는 눈사람. 눈사람조차, 만든 사람의 마음이 담겨져 있다. 신기할 것도 없다. 세상사 다 이심전심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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